어릴 때 부터 친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번역가이다.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을 때 그녀가 번역한 링컨 위인전을 선물받아 읽었다. 기독교의 교훈을 담고 있던 책이었다.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 아직까지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링컨은 무슨 선거에선가 패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자마자 단골 미용실에 가 멋지게 머리를 자른 후 멋진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링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패배자처럼 의기소침해 있으면 누가 봐도 패배자처럼 보입니다. 자신감이 없어 보인단 뜻입니다. 아직 내 인생엔 많은 기회가 있기에 다음 기회를 위해 승리자처럼 멋있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기분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저 책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저 대목과 링컨이 암살당하는 장면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9년 간의 삶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승리의 순간보다는 패배의 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패배의 경험들을 나열하고자 했으나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질 않을 정도이다. 언제부터인가 패배감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링컨의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의기소침해지고 무력감을 느끼고 스스로가 쓸모없다는 기분에 잠기다가도 벌떡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나가서 무엇이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고, 머리가 길다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른다. 내키지 않아도 밖에 나가 음악을 들으며 달려 보기도 한다.
패배감, 무력감, 분노, 불안은 삶과 함께 존재한다. 때로는 그것들에 둘러싸여 며칠이고 몇 주고 진이 빠져 지낼 때도 있다. 무엇에도 집중을 못하고, 잠은 자도 자도 부족한 듯 느껴진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어느 시점엔 그것들이 나를 영원한 패배자로 만들지 못하도록 정신을 다 잡고 나를 격려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길고 추운 겨울은 결국 지나가고 봄이 오기 마련이다. 오늘 밤엔 잠을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