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2.01.17

bysnow 2022. 1. 1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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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을 쓴 이후로 약 한달이 지났다. 그 동안 친구들과 맥주와 소주, 약간의 위스키를 마셨고 4편의 영화를 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해 첫 일출을 봤고, 값이 꽤 나가는 기계식 키보드를 하나 샀고, 오랜만에 교회에 나갔고, 경주행 왕복 기차표를 끊었다. 이것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은 대체로 슬프거나 즐겁지는 못한 일이었다. 잠시 쓰기를 멈추고 생각해보니 이름을 댈 수 있는 슬프거나 즐겁지는 못한 일이 최소 8개는 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슬프거나 즐겁지는 못한 일이 있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무슨 소설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세상 모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뭐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슬프거나 즐겁지는 못한 일을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불행이기 때문에, 나는 저 러시아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첫 금요일에 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A역까지 약 40분 간 걸어갔다. 평소에는 A역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한 후 A역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퇴근하지만 종종 이유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A역까지 가는 길에 나는 속으로 하나의 규칙을 생각해냈다. 만일 건널목이나 교차로에 지하도가 있는 경우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무조건 지하도로 길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 같은 길을 걸어갈 때는 늘 횡단보도를 건넜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길을 건너는 것은 나름 재밌을 것 같았다. 

큰 사거리에 위치한, 그 날 내가 두 번째로 맞닥뜨린 지하도의 지하에는 양말이나 휴대폰케이스 따위를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었는데 다들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내 맞은편의 계단을 통해 내려와 나를 지나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로를 지나치는 우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행복 또는 불행에 잠긴다. 혼자 혹은 애인이나 고양이 또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잠에 든다. 방금 내 옆으로 지나간 여자는 지금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의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에서 애인과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산다.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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